헤테로포니는 12월 31일 서울의 바/클럽 신도시에서 열리는 연말/새해 파티 <송구영신도시>에 디제잉 공연 초청을 받았다. 초청 연락을 받은 당시 필진 네 명 중 누구도 디제잉 경험이 없었지만, 정구원 필자가 12월 한 달 동안 프로듀서/디제이 벨라(bela)에게 수업을 들은 뒤 공연자로 서기로 했다. 이 글은 그렇게 시작된 디제잉 수업에 대한 개인적인 기록이자 에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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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제잉은 기계를 만져서 음악을 끊기지 않게 소개하는 거예요.”

공연장에서 보던 것보다 좀 더 작고 간략하게 생긴 디제이 컨트롤러와 디제잉 소프트웨어가 화면에 떠 있는 자그마한 카페 안에서, 벨라 선생님은 이제까지 내가 들었던 어떤 설명보다도 간략하고 명확하게 디제잉이 어떤 행위인가에 대해 정의내렸다. 이 설명을 ‘간략하고 명확하다’고 느낀 것이 내가 지금부터 한 번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디제잉이라는 걸 가르쳐 주실 선생님의 첫 마디였다는 점 때문이라는 걸 완전히 부정하지는 못하겠다. 하지만 이 정의에 담긴 간단명료함이 내가 앞으로 하게 될 활동에 있어서 확실한 방향성을 제시해 주는 것도 사실이었다. 기계를 만져서, 끊기지 않게, 음악을 소개한다.

 

 

1) 기계를 만져서

힙합의 역사를 다루는 넷플릭스의 다큐멘터리 시리즈 《힙합 에볼루션》 1화에서 그랜드마스터 플래시(Grandmaster Flash)는 두 대의 턴테이블 위에 놓인 LP 두 장을 바쁘게 돌리면서 말한다. “브레이크(break)를 빨리 찾으려고 크레용으로 둥글게 표시했어요. 브레이크가 있는 곳에 표시하고, 브레이크의 인트로 쪽에 또 다른 표시를 남겼어요. 그러고 나서 톤암을 몇 번이나 지나는지 직접 세어봤어요. 하나, 둘, 셋, 넷, 다섯…” 디지털이라는 개념이 아직 기계에 도입되기 전 모든 디제이는 육체와 기억력, 크레용 등의 힘을 빌려서 음악을 틀었고, 이것은 대부분의 저장 버튼이 아직도 3.5인치 플로피 디스크 형태의 아이콘으로 자신의 역할을 드러내는 것처럼 우리가 디제이를 생각할 때 흔히 떠올리는 모습이 되었다.

그랜드마스터 플래시가 LP를 돌리는 기술을 선보인 지 40년이 지난 지금, 나는 음악 파일을 읽은 디제이 소프트웨어가 파형과 BPM, 조성, 리듬, 큐(cue) 지점 등을 자동으로 분석해서 깔끔하게 표시해 주는 광경을 지켜본다. 1초도 안 되는 시간에 잘게 쪼개진 디지털 조각들의 분석이 완료되고 디제잉에 필요한 모든 (물론 멍청한 분석이 나올 경우를 위한 약간의 조정은 필요하지만) 정보를 화면에 띄우는 광경은 일종의 마법처럼 느껴진다. 그 마법은 2019년을 살아가고 있는 대부분의 디제이를 육체적 난관 – 이를테면 LP를 정확하게 꺼내고 턴테이블 위에서 삑사리가 나지 않게 목표가 되는 지점까지 돌리는 손놀림 – 으로부터 해방시켰다. 그리고 동시에, 디제잉을 보는 관객들은 디제이가 USB를 CDJ에 꽂은 이후의 시점에서 정확히 어떤 행위가 이루어지는지에 대해 더 이상 정확하게 알 수 없게 되었다. 아마 그것이 우리가 여전히 디제이를 생각할 때 턴테이블을 떠올리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육체성이라는 요인의 상실은 그것을 하나의 이미지로써 나타낼 수 있는 상징을 함께 잃어버리게 만든다. 그리고 우리는 디지털을 효과적으로 상징화할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지에 대해 여전히 확실한 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위를 건드리면 끊긴다. 옆으로 돌려라

 

2) 끊기지 않게

수업을 듣기 전까지 디제잉이 끊긴다는 건 단순히 곡을 제대로 못 잇는 경우에만 해당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끊긴다’는 상황에 얼마나 많은 경우의 수가 존재하는지 알게 되니 벌써부터 머리가 핑핑 도는 기분이었다. 조그 휠(디제이 컨트롤러에서 가장 커다랗게 보이는 그 원판)은 위를 절대 건드리지 말고 옆부분을 살살 돌려서 비트의 싱크를 맞춰야 하고, 플레이 버튼만 눌러 놓은 채 페이더(각 덱에 걸려 있는 곡의 볼륨 크기를 조절하는 슬라이더)를 올리지 않는 실수를 하면 안 되며, 필터(특정 주파수의 음역대만 걸러서 재생되게 만드는 기능) 노브가 돌려져 있는 채로 다음 음악을 재생해도 안 된다. 물론 이전 곡이 끝나기 전에 다음 곡을 (가능하면 자연스럽게) 이어서 틀어야 하는 것은 기본이다…

이걸 어떻게 다 기억한담? 벌써부터 겁이 더럭 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선생님이 알려주신 해결책은 의외로 간단했다. 끊어져도 당황하거나 도망치지 말고 다음 곡을 계속 틀면 된다. 어차피 관객들은 20분 정도 지나면 그런 실수가 있었다는 것을 잊어버리니까. 그 말을 들으면서 실시간으로 사람들 앞에서 공연을 하는 행위에 대해 생각했다. 무수히 많은 음악가가 자신이나 동료는 알지만 관객들은 눈치챌 수 없는 실수를 할 것이고, 때때로 관객들도 눈치챌 만큼 심각한 실수가 터져 나올 것이며, 그 중 일부는 기록되어 끝없이 지속될 놀림거리가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음악가는 이미 진행 중인 공연을 끝까지 이어 나가고, 그 이후로도 계속해서 공연을 한다. 그것은 나처럼 글을 쓰는, 타인의 시선에 노출될 일이 없고 실수를 고칠 기회가 수없이 많은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무척 낯선 감각으로 다가온다. 실시간으로 되돌릴 수 없는 실수가 벌어지는 건 어떤 기분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나아가는가? 어쩌면 이번 디제잉은 내게 실수를 털어버리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를 알려주는 기회가 될지도 모르겠다. 물론 가능하면 그런 실수를 하지 않았으면, 끊기지 않게 음악을 틀 수 있었으면 좋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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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음악을 소개한다

무엇을 틀어야 하는가? 연습에 필요한 곡을 처음 고를 때까지만 해도 나는 아르카(Arca), 제일린(Jlin), 소피(SOPHIE) 등의 ‘어느 정도’ 알려진, 새롭고 이상한 소리를 들려주는 아티스트들의 음악을 선곡하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내 컴퓨터에 저장되어 있는 그런 아티스트들을 뒤지다 문득, 내가 재미있게 즐겼던 파티에서는 그런 ‘어느 정도’ 알려진 아티스트의 음악을 트는 디제이가 거의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공연장에서 아무리 샤잠(Shazam)을 켜도 별다른 결과가 나오지 않았던 건 소리가 너무 크거나 많은 곡이 섞여 있기 때문이라기보단 애초에 그 곡이 샤잠의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되어 있을 만큼의 인지도를 가지지 않았기 때문인 것일까? 그런 고민을 하고 있던 찰나, 벨라 선생님한테서 연락이 왔다. “너무 큰 아티스트는 되도록 트는 걸 지양해주세요.”

안일했던 마음가짐을 뒤로 한 채 사운드클라우드(Soundcloud)와 밴드캠프(Bandcamp)를 뒤지기 시작했다. 수업은 바로 내일로 다가왔고, 나는 적당적당히 모았던 라이브러리의 상당 부분이 쏟아져 나간 빈틈을 모아야 한다. 그 과정에는 여러 가지 자괴감이 섞여 있다. 내가 지금까지 들어왔던 이상한 음악이 사실 이 바닥에서는 누구나 다 알 법한 유명한 스탠더드 넘버들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내 취향의 알량함에 스크래치), 끝도 없이 펼쳐져 있는 웹페이지를 탐색하면서 지금까지 못 들어봤던 좋은 음악들을 제대로 감상하지도 못한 채 10초 정도만 듣고 허겁지겁 쓸어 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게으른 음악 감상 태도에 스크래치), 내가 제대로 들어보지도 못한 음악을 단순히 신나게 트는 것이 과연 ‘음악을 소개한다’는 점에 부합하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품는 것(디제잉이란 행위의 목적에 스크래치) 등의 부끄러움이 고르게 섞인 고난의 행군.

그나마 그런 자괴감을 조금이나마 덜어준 것은 그 숨 가쁜 벌충을 통해 발견하게 된 음악이 정말 괜찮은 것 같다는 자신감이었다. 플레이리스트와 구입 목록, 좋아요 표시, 리스트, 다양한 믹스들이 이루는 거미줄을 타고 다니며 발견한 점은 사람들이 알려지지 않은 좋은 음악을 어떤 식으로든 정리해 놓으며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어 한다는 점이었다. 그런 점에서 디깅은 구름 속이나 바다 위를 헤집거나, 혹은 말 그대로 땅을 파는(digging) 행위처럼 계속해서 변화하는 자연의 공간을 탐사하는 것보다는 커다란 고층 빌딩들 사이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 작은 가게를 찾아가는 것에 좀 더 가깝게 느껴진다. 디지털 세계 속에 올라가 있는 음악은 그것이 지워지지 않는 한 계속해서 거기에 남아 있다. 그것을 찾아내는 데 가장 좋은 길잡이가 되어주는 건 여전히 사람의 몫이다.

300곡을 채우는 데에는 성공했다. 남은 문제는 두 가지다. 이게 연습에 적당할까? 그리고 이 곡들 중에서 셋을 짜기 위해 무엇을 골라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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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아 온 곡들에 대해 벨라 선생님이 내린 평가는 두 가지였다. 곡이 좋다. 그렇지만 (특히 초심자에게) 디제잉하기 어려운 곡들이 많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디제잉을 하면서 비트매칭(각 곡의 박자가 어긋나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만드는 일)을 쉽게 하기 위해서는 4/4박자 마디에 어긋나는 브레이크가 없고 구조가 단조로운 곡을 고르는 것이 좋은데, 나는 그걸 전혀 생각하지 않고 이상한 일렉트로닉 음악을 잔뜩 모아 왔으니까.

 

 

그러니까 이런 트랙처럼 말이다. 유리를 커터칼로 긁어대는 듯한 질감의 신스가 이따금씩 4박을 치기도 하지만 제멋대로 텅텅텅텅텅텅텅거리는 경우가 더 많은 킥 위에 얹히는 cc의 곡은 내가 정말 선호하는 종류의 이상한 댄스 음악이지만 디제잉을 할 때는 마디가 딱딱 맞는 다른 곡보다 더 신경을 써 줘야 한다. 이전 곡의 어떤 포인트에서 어떻게 들어가야 괜찮은 비트매칭이 될까? 다음 곡은 또 어떻게 이어야 할까?

물론 디제잉에는 정해진 규칙이 있는 것이 아니고, 비트매칭을 무시한 채 제멋대로 틀어도 좋은 디제잉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클럽에 온 사람들이 모두 나처럼 엇나가거나 비트 없이 노이즈만 나오는 음악에도 춤을 출 수 있을까? 이 수업을 받기 이전의 나였으면 비트매칭이나 춤출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건 좋은 디제잉과 전혀 무관하다는 강경한 입장을 내세웠겠지만, 부킹(섭외)이 되느냐 마느냐를 고민할 필요가 없는 일일 디제이임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그런 이야기를 하기가 조금 망설여진다. 관객이 지루해하면서 클럽을 나가버리는 광경을 디제이의 입장에서 지켜보는 게 그리 좋은 기분이 아닐 거라는 걸 인식하게 되어서일까?

고민을 뒤로 한 채 벨라 선생님의 라이브러리를 가지고 2시간 동안 믹싱을 연습했다. 벨라 님이 자신의 라이브러리에서 다음 곡을 골라주면 거기에 맞게 즉흥적으로 잇는 식이었다. 선생님은 이걸 ‘디제이 깜지’라고 불렀는데, 적절한 비유라고 생각했다. 난생처음 들어보는 곡들을 이으면서 플레이 버튼을 누른 뒤에 페이더는 어떻게 올려야 하는지, 저/중/고음부를 조절하는 이퀄라이저는 어떻게 조정해야 두 곡이 부드럽게 이어질지, 다음 곡을 덱에 걸기 전에 템포 슬라이더를 제대로 조절해서 BPM(분당 비트, Beat Per Minute)을 맞췄는지를 확인해야 했다. 연습이 끝나고 나니 어지러웠다. 조금이라도 집중하지 않으면 비트가 엉키거나 최악의 경우에는 곡이 끊기는 거였으니까.

믹싱을 실제로 해 보니 분명해진 점 한 가지는 내가 클럽에서 짜릿하게 느끼는 순간의 상당수가 곡과 곡이 ‘겹치는’ 것으로 인해 발생한다는 것이었다. 각각의 곡은 그 자체로 멋지지만, 그것들이 겹칠 때 경우의 수는 거의 무한대에 가깝게 늘어나면서 각 곡에서 경험할 수 없었던 새로운 재미를 만들어낸다. 전혀 들어보지 못했던 곡들을 가지고 연습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겹침의 순간은 거의 언제나 ‘내가 이런 걸 만들어내고 있단 말이야?’ 하는 놀라움을 가져다줬다. 디제잉에 있어서 비트매칭을 중요시하는 것이 단순히 박자의 흐트러짐을 방지하기 위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서로 다른 차원에 존재하던 소리들이 믹서 속에서 만나서 새로운 질감을 형성하는 증폭을 이룰 때, 그것은 그 소리들이 유사한 형식이나 구조(이를테면 4박) 속에 자신을 고정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을 테니까. 어쩌면 디제이들은 그러한 증폭을 만들어내는 일에 극도로 몰두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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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브러리를 정리하는 것이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다. 디제잉을 하기 위해서는 트랙터(Traktor), 레코드박스(rekordbox), 세라토(Serato) 등의 프로그램에 곡을 넣고 라이브러리를 정리해야 하는데, 꽤 많은 인내심을 요구하는 일이다. 곡에 대한 분석을 돌리면 자동으로 BPM과 그리드를 맞춰 주긴 하지만, 소프트웨어가 하는 일이 늘 그렇듯 BPM을 엉뚱하게 잡거나 이상한 곳을 마디의 시작점으로 잡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그렇기에 곡 하나하나를 살펴보며 일일이 조정해 줘야 한다. 하루에 앨범 5~6개를 정리하고 나면 이미 녹초가 되는데, 전업 디제이들의 인내심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졌다.

 

베리얼(Burial) “Loner”의 파형

 

그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일상에서 음악을 분석하는 감각이 서서히 변화하고 있는 것도 느껴졌다. 이전이었다면 음악을 들을 때 거의 고려하지 않았을 법한 요소, 그러니까 이 곡의 한 마디는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가, 빌드(build)를 쌓아 나가다가 빵 터뜨리는 드롭(drop)이 어떻게 나뉘는가, 그 드롭까지 걸리는 마디는 얼마나 되는가 등의 정보가 라이브러리를 정리할 때만이 아니라 모든 음악을 들을 때 머릿속에 흘러들기 시작했다. 말하자면 이것은 음악을 도구 혹은 재료로 파악하기 시작했다는 이야기일 텐데, 이것이 내가 앞으로 음악을 듣는 태도에 있어서 장기적으로 어떤 영향을 끼칠지가 문득 궁금해졌다. 아마도 이것을 신경쓰기 전으로 돌아가는 건 이제 불가능할 테지.

그런데 언제는 또 안 그랬는가? 나는 “Loner”를 틀 때마다 격렬하게 작은 궤도를 그리는 4개 음의 신시사이저가 터져 나오기를 기대에 찬 채로 기다렸던 것 같다. 디제잉은 그런 감각을 보다 정교하게 다듬을 수 있는 틀을 마련해준 게 아닐까? 아마도 음악을 만드는 사람들 역시 그 감각을 제공하기 위해서 (미디 소프트웨어에서 악보에 이르기까지) 비슷한 틀을 사용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던져야 할 질문은 조금 방향을 달리할 필요가 있다. 음악을 듣는 데 있어서 그것을 만드는/규정하는 도구는 감각을 어떤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걸까? 그러한 ‘도구’에 포함될 수 있는 개념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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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라 선생님이 오늘 내 준 과제는 이태원에 있는 클럽 케익샵(Cakeshop)에서 코드9(Kode9)과 둔 칸다(Doon Kanda)의 공연을 보는 것이었다. 과제로 내주시지 않았어도 보러 갈 수밖에 없는 이름들이었지만, 과제라는 임무를 받아들고 나니 왠지 마음가짐이 달라지는 기분이었다. 오늘은 단순히 춤만 추는 게 아니라 뭔가를 배워가야 하는 것이다.

일본 태생 캐나다인 비주얼 아티스트 제시 칸다(Jesse Kanda)가 음악을 만들 때 쓰는 예명인 둔 칸다의 디제잉은… 좋은 의미에서나 별로인 의미에서나 제멋대로였다. 비트매칭 같은 건 전혀 신경쓰지 않았으며, 다른 사람 곡은 하나도 고르지 않고 영롱하지만 왜곡된 오르간 소리가 공허한 비트와 결합해 있는 자기 곡만 주구장창 틀었으니까. 케익샵이 아니라 성당에서 공연이 열렸으면 지금보다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둔 칸다의 커다란 몸이 휘적휘적대면서 오르간 소리에 맞게 흔들리는 걸 보고 있는 건 그거대로 귀여운 광경이었다. 저 사람이니까 그것이 매력으로 다가오는 거겠지.

둔 칸다에 이어진 코드9의 디제잉은 ‘잘 하는’ 동시에 ‘좋은’ 디제이가 어떤 모습인가에 대해서 온몸으로 롤모델을 제시하는 듯한 셋이었다. 잘 하는 영역(다음 곡 셀렉션에 2초밖에 걸리지 않음 / 과감한 페이더와 이퀄라이저 운용 / 적절한 조그휠 스크래치 / 곡에서 어떤 부분을 강조하고 어떤 부분에서 끊어야 하는지에 대해 완벽하게 꿰고 있는 듯한 움직임 / 그 외 내가 아직 알 수 없지만 분명하게 의미가 있어 보이는 동작들)과 좋은 영역(귀를 찢어버릴 기세로 미드와 하이 음역대를 올려서 만든 자신만의 사운드 아이덴티티 / 풋워크가 조금 낡은 장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완전히 찢어버리는 확고한 자신감의 풋워크 중심 셋 / 처음부터 달리는데도 텐션이 전혀 떨어지지 않는 빠른 곡들)이 함께 겹쳐지는 걸 지켜보는 건 역시 즐거운 일이다.

더불어, 연주를 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을 때 공연에서 들어오는 정보량이 이렇게까지 달라진다는 점에 위화감도 느껴졌다. 코드9의 스킬은 빠르고 정확하며 훌륭했고, 그건 내가 디제잉을 배우지 않았다면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을 법한 종류의 정보였다. 경계심이 드는 건 그것이 음악을 넘어서 그것을 만들어내는 스킬에 더 집중하게 되는 길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생기기 때문이었다. 프로그레시브 록이나 테크니컬 데스 메탈처럼 스킬풀한 것에 높은 점수를 주는 장르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는데, 그 사람들의 심정을 약간이나마 엿보게 된 듯한 느낌이랄까. 평소에 연주력은 좋은 음악과 관계가 없다는 생각을 지론으로 삼고 있던 내 입장에서 이건 조금 분한 심정이다.

하지만 당장 첫 공연을 앞둔 사람의 입장에서 ‘코드9처럼 틀고 싶다’라는 욕망이 꿈틀거리는 게 나쁜 일만은 아닐 것이다. 집으로 운전을 해서 돌아오는 길에 그의 믹스를 들었는데, 물론 케익샵에서 들을 때의 느낌은 아니었지만 이것이 PA 스피커에서 커다란 소리로 흘러나온다고 가정해 보면 그다지 큰 차이가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두 명의 기타리스트(피트 타운젠드Pete Townshend와 키스 리처즈Keith Richards)가 강조하는 것은 증폭이 단순히 볼륨의 문제가 아니라는(그래서 단지 노이지한 공격이 아니라는) 점이다. 높은 볼륨이 채택되는 이유는 전기적으로 증폭된 소리에 특유한 어떤 특징의 사운드를 만들기 위해서이다. 여기서 볼륨과 사운드 특징 간의 상호 관련성이 존재한다. 사운드 웨이브의 진폭을 넓히는 것은 그 특징적인 패턴, 즉 음색을 변화시키는 것이다.”1 테오도어 그래칙(Theodore Gracyk)이 록 음악의 시끄러운 소리가 지닌 미학에 대해 했던 이야기는 이미 레코딩된 음악을 다시 증폭시키는 디제잉에서도 여전히 유효해 보인다. 코드9에 비하면 보잘것없어 보이는 내 디제잉도 크게 틀면 어딘가 달라질까?

 

12/20

월요일, 수요일, 금요일 동안 수업을 들으면서 디제이 깜지를 진행했고 이 행위가 손에 익는 것이 분명하게 느껴진다. 최소한 조그 휠 윗부분을 건드리진 않게 되었으니 이거 때문에 음악이 끊기는 일은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사람들 앞에 섰을 때도 손이 연습할 때와 같이 자연스럽게 움직일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연습을 하는 것이지만.

헤테로포니 필진들이 고른 트랙들을 살펴보면서 셋을 어떻게 진행할지를 대략 구상해 보았다. 베이스 음악(Bass music)과 풋워크를 적당히 섞고 앰비언트와 노이즈, 옛날 팝들을 간주곡처럼 삽입하는 형태로. 헤테로포니는 새벽 시간대에 배치되었고, 벨라 선생님은 그 시간이면 사람들이 지쳐 있기 때문에 디제잉 스킬보다는 뿌수는 곡만 잘 골라도 호응이 있을 거라고 말했다. 조금이나마 부담이 가시는 기분이 들었지만 결국 제대로 뿌숴주는 트랙을 찾아내야 한다는 부담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는 생각에 마음이 다시 무거워졌다. 왜 이런 걸로 마음이 무거워져야 하는지😭

셋을 짜면서 좋은 트랙에 대한 기준이 자꾸 지금 나에게 필요한 트랙으로 좁혀져 가는 듯한 느낌에 사로잡힌다. 그렇지만 그 트랙들을 이리저리 섞으면서 이전이었다면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을 법한 곡들에서 새로운 매력을 찾는 경험도 이어지고 있다. 아마도 이 한 달은 내가 살면서 저지 클럽(Jersey Club)을 가장 많이 찾아 들은 한 달이 아니었을까. 그렇지만 이 트랙들을 공연이 끝나고 난 뒤에도 평소에 음악을 듣던 것처럼 차분하게 다시 돌려 들을지에 대해서는 확신이 들지 않는다.

 

12/26

거의 한 주에 가까운 시간을 수업 없이 연습하고 새로운 노래를 찾는 데 보내고 싶었다. 실상은 그렇게 보낸 시간보다 다른 일을 하면서 흘려보낸 시간이 더 많았다. 내일 수업을 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연습은 내가 듣기에도 너무 엉망진창이었다. 잘하고 싶으면 시간을 쏟아야 하는데 지금 내 상태는 어떻게 봐도 도둑놈 심보로 공연에 임하려는 것 같아 부끄럽기 그지없다.

겨우겨우 셋을 완성했지만 이게 어떤 식으로 들릴지 정말 모르겠다. 언제나 좋은 음악을 듣고 좋은 공연을 경험했다 보니 나도 그 정도로 할 수 있을 거라는 착각에 빠져 있었던 것처럼 느껴진다. 어쨌든 완성을 했다는 것에 의의를 두고 싶지만 마음은 무겁고 손은 내가 바라는 것만큼(즉 코드9만큼) 빠른 속도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저 큰 소리로 들으면 이것보다는 조금 나을 거라는 근거 없는 기대를 걸어 볼 뿐이다.

셋을 짜면서 가장 아쉬웠던 건 록 음악을 셋에 억지로라도 욱여넣을 틈이 도무지 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헬(Hell)처럼 전부 부숴버리는 슬럿지 메탈이나 라이트닝 볼트(Lightning Bolt) 같은 노이즈 록을 넣어 보려고 했지만, 박자를 어떻게든 맞춘다고 해도 록 음악 특유의 ‘쨍하게’ 믹싱된 비트가 일렉트로닉 음악의 균일한 비트와 계속해서 충돌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올해 3월 30일 채널1969에서 열렸던 《Quick-Die vs 8echno》공연에서 유야 타케치(Yuya Takechi)가 그라인드코어(Grindcore) 곡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셋에 녹여냈던 걸 참고로 하고 싶었는데, 역시 하루아침에 될 일은 아닌가 보다.

 

12/27

 

 

파이오니아(Pioneer)의 디제이 믹서에는 재생되는 곡에 자체적으로 여러 가지 효과를 입힐 수 있는 이펙터가 존재한다. 공간감을 만드는 리버브(Reverb)나 소리를 여러 가지 방법으로 지연시켜 재출력하는 딜레이(Delay), 에코(Echo), 스파이럴(Spiral) 등이 있다. 오늘 연습에서는 처음으로 랩탑과 컨트롤러가 아닌 올인원 시스템으로 연습하면서2 이펙터를 다뤄 보게 됐는데, 내가 짠 셋에서 가장 골머리를 썩이는 부분이었던 ‘곡 사이의 부드러운 전환’이 적절한 이펙터의 사용만으로 순식간에 해결되었다(물론 손을 지금까지보다 더 빠르게 놀린다는 전제하에). 어제까지 해결이 되지 않아 고민했던 게 무색해질 지경이었다.

그렇지만 벨라 선생님은 이펙터를 많이 사용하는 것보다는 이퀄라이저의 조절, 그러니까 고/중/저음부를 깎거나 늘리는 것만으로 곡을 전환하는 것이 좀 더 정직한 방법이라고 설명해 주셨다. 이펙터를 사용하면 어떤 곡의 어떤 부분에서든 부드럽게 잇는 것이 가능하지만, ‘EQ질’만으로 곡을 전환하면 당장 힘들지는 몰라도 어떤 곡을 어떻게 이어야 할지, 그리고 곡 내에서 어떤 파트를 살리고 버려야 할지에 대해 판단하는 능력이 더 늘어나기 때문이라고. 당장 닷새 후가 공연인데 그걸 어떻게 연습하냐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지만, 그 가르침에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음악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고 좋은 디제잉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그렇게 수긍하고 나서 문득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디제잉을 계속하고 싶은 걸까? 왜 ‘진지하게’ 같은 당위론적인 생각까지 하면서 여기에 임하는 거지? 그렇게 의문을 가지고 나니, 간단한 기록이나 남겨 보자고 가볍게 시작했던 이 글을 이렇게까지 길게 쓰고 있다는 사실에도 지금에서야 위화감을 느끼게 된다. 신도시에서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만 해도 평소에 관심 있었던 디제잉을 배울 겸 공연도 하면 재밌겠다 싶은 가벼운 마음가짐이었는데, 나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이걸 더 잘 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이 ‘잘 하고 싶다’는 마음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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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 왜 떨어져 있냐

 

올인원 시스템이 아닌 플레이어+믹서 조합으로 마지막 연습을 했고, 연습하지 않았으면 공연장에 갔을 때 큰일이 날 뻔했다. 같은 회사에서 만든 기계인데도 미묘하게 차이가 나는 인터페이스에 적응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했다. 특히 지금까지 경험했던 시스템에서는 편리하게 붙어서 내가 열심히 정리한 마디를 동시에 출력해 주던 정보 스크린이 플레이어 두 대에 외따로 분리되어 있다는 점이 가장 적응하기 어려웠다. 벨라 선생님께서 그 동안 항상 ‘매칭을 하려면 눈으로 파형을 쫒지 말고 귀로 듣고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던 게 어째서였는지 단번에 이해가 갔다. 그 동안 수업을 들으면서 확인해 왔던 기술에 감탄하다가도 결국 마지막에 와서는 다시 육체의 감각에 많은 것을 의존해야 한다는 점이 조금 허탈하게 느껴지긴 하지만, 디제잉이 처음에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생각해 보면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온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많은 연습을 했지만 이게 좋은 셋인지, 내 디제잉이 괜찮은지에 대해서 아직 확신이 들지는 않는다. 오히려 연습을 거듭할수록 부족한 부분이 귀에 잡히고, 그걸 보완할 시간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은 것처럼 느껴진다. 아마 공연을 마치고 난 다음에는 좋았던 부분보다 제대로 안 된 부분이 더 마음에 많이 남을 것이고, 배가 뒤틀리는 듯한 긴장감은 아까부터 사라지지 않는다. 그렇지만 벨라 선생님을 포함해 내 연습을 지켜본 몇몇 사람들이 좋은 부분을 잘 짚어 주었고, 내가 듣기에도 참 괜찮다 싶은 순간이 없진 않았다.

배움을 처음 시작했을 때 명확하고 간단해 보였던 정의, “기계를 만져서 끊기지 않게 음악을 소개한다”가 지금은 가장 불확실하게 느껴지는 무언가로 변했다. 아직 공연이 시작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 글을 어떻게 끝내야 할지 고민해 보았지만, 잘 할 수 있을 거라는 다짐을 짓기보다는 이러한 불확실함을 맺지 않고 그대로 열어 두는 게 지난 한 달 동안 내가 느꼈던 점들을 제일 잘 정리할 수 있는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그 불확실함은 전부 다 들어볼 수 없을 정도로 넓고 깊게 펼쳐져 있는 인터넷 속 음악들을 대하는 것처럼 막막하기도 하지만, 무작정 골라낸 음악들이 연결되며 이상한 즐거움을 내뿜을 때의 눈부심처럼 잊을 수 없는 순간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부록 삼아서, 내가 정말로 셋에 넣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이 떠나보내야 했던 몇몇 곡들을 걸어 둔다. 만약 다음 기회란 것이 존재한다면, 그 때는 애정을 담아서 이 곡들을 틀어 보고 싶다. 이렇게 미련을 가지고 있는 걸 보면 아무래도 나는 ‘다음 기회’를 바라고 있는 모양이다. 그 바람이 공연이 끝나고 난 뒤에도 내 안에서 이어질지는 모르겠지만.

 

DJ Loser & XIAO QUAN “Tunnel Highway”

 

LOFT “thank u , next [ salford girls club flip ]”

 

Odete “AND MOISTURIZE THE PAIN”

 

Hell “Helmzmen”

 

Lightning Bolt “Dracula Mountain”


정구원 | lacelet@gmail.com
음악웹진 [weiv] 편집장,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대중음악을 듣고 그에 대해 쓰고 있으며, 대중음악의 범위와 효과에 대해 관심을 가진다.

 

각주

  1. 테오도어 그래칙, 장호연 역, 『록 음악의 미학 – 레코딩, 리듬, 그리고 노이즈』, 이론과실천, 2002, p. 207
  2. 디지털 디제이 장비는 크게 플레이어/믹서 및 컨트롤러로 나뉘는데 이는 디제잉을 할 때 컴퓨터에 설치된 디제이 소프트웨어의 필요 유무에 따라 나눈 것이다. 플레이어/믹서 조합은 소프트웨어가 설치된 컴퓨터 없이도 CD나 USB를 꽂아서 곧바로 디제잉을 할 수 있으며, 컨트롤러는 자체적으로 디제잉을 할 순 없고 컴퓨터에 연결한 뒤 디제이 소프트웨어를 통한 디제잉을 하는 일종의 키보드 역할을 한다. 올인원 시스템은 서로 분리되어 있는 플레이어/믹서를 기계 하나로 합친 장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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